|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같은 구절 앞에 “마음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마태는 부자였기 때문에 “마음이”를 덧붙였을 것이다. 기독교도들은 대부분 마태복음에 있는 구절을 인용한다.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슬피 우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열거되어 있다. 가난하니 굶주리고 그래서 슬피 운다. 그 다음 구절에 나오는 “부요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웃는 사람들”과 대비되어 있어서 “가난”이란 말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을 것이고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이 구절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으로 되어 있고 반대되는 사람들을 언급하는 구절은 따로 없다. 대체로 추상적인 말들로 이어져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마태는 세리였다. 세리는 세금을 걷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그들을 싫어했다. 게다가 세리가 되려면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마태가 세금을 걷고 다니던 때는 유대가 로마 제국 속주로 있을 때이었다. 일제치하 조선과 비슷한 상황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부요한 사람이 되었다면 매국노일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면 민중일 것이다. 예수는 유대를 해방시킬 메시아로서 로마 제국에 핍박받는 가난한 유대인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고 로마 제국에 빌어먹는 부요한 유대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부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 앞에 “마음이”라는 모호한 말을 집어넣고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는 부분도 뺐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도들이 물질적 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누가복음에 있는 구절을 읊어준다. 그러면 기독교도들은 십중팔구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 했다며 마태복음을 인용하며 반박한다. 두 구절 모두 성서에 나와 있지만 기독교도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선택한다. 성서에는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구절도 있다. 예수 또한 거지나 다름없어서 기독교는 반反부자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기독교도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이 분명하지 않은 구절을 들어서 부에 집착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냥 부자를 찬양하는 종교를 찾아서 믿으면 될 텐데 말이다. 나는 이 구절을 두고 기독교도인 우리 큰누나와 ‘누가복음이 맞네’, ‘마태복음이 맞네’ 하면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나와 지어미가 성서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초등학생 조카가 한마디 했다. “성경은 시편이 짱이지.” <<성경전서 새번역>>(2001/2005 8쇄 대한성서공회) | 알라딘 6,840원 존 보커 지음, 이종인 옮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성서>>(2003/2007 2쇄 시공사) | 알라딘 27,000원 사도 바울은 헬레니즘화된 도시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이었다. 바울은 예수의 열두 제자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복음’에 관한 문제로 그들과 대립하였다. 그런데도 바울과 바울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편지들은 신약성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킬리키아(오늘날 터키 남부)의 타르소스에서 태어났다. 타르소스는 그리스어가 널리 쓰이는, 헬레니즘화된 도시였다. 바울은 유대교를 신실하게 믿는 유대인이었고 헬레니즘을 의식적으로 거부했지만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며 로마 시민이기도 했다. “헬레니즘 세계의 의식과 철학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전파했던 핵심적 개념은 ‘구원자로서의 신’과 ‘타락한 인간 상태’라는 두 가지 개념이었다. 구원자로서의 신 개념의 고전적 패턴은 고대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에게서 유래한 것이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살아나 하늘로 올라간 예수를 ‘타락한 인간 상태’에서 벗어난 ‘구원자로서의 신’으로 해석했다. “이집트인들은 거의 3,000년 동안에 걸쳐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와의 제의적 합일을 통해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체험하는 제의적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정통 유대교에있어 이질적인 것이었다.” 예루살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였다. 예루살렘 기독교도들은 유대교 율법을 지켰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이방 교회에서 개종하여 전도사가 되었고 유대교 율법을 따르지 않는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가르쳤다.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이 예수에게 직접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루살렘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가르친다고 은근히 공격했다. 예루살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이방인의 구원자”로 만든 바울에 맞서 대리인들을 보내 신참인 바울의 권위를 깍아내렸다. 바울은 예수의 형제들이며 예수의 제자들인 그들의 권위에 공공연하게 도전할 수 없었다. 바울은 타협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죽을 뻔했으나 로마군이 그를 체포하고 유대인 소요를 염려해 감금했다. 바울이 체포되면서 이방 교회들은 바울의 가르침 대신 예루살렘 기독교의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이때 제1차 유대 독립전쟁이 발생했다. “서기 66년에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로마의 유대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 4년 동안의 격렬한 전쟁이 있은 후 유대 국가는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으며, 성전은 파괴되었다.”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들은 사라져 버렸고 다른 지역의 이방 교회들만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바울의 권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다. 신약성서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쓰여진 문서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방 기독교 지도자인 바울의 가르침이 기독교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초기 기독교 전도활동을 기록한 <사도행전>은 열두 제자들보다 바울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으며 신약성서의 다른 부분들도 바울의 편지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인 나사렛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기독교의 기본 교리가 되었다. 로마 시민 바울의 헬레니즘화된 가르침은 지중해 주변을 하나로 통합한 로마 제국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이 믿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기독교 최대 교파인데,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사도행전>의 일부 라틴어 판본을 보면 유대교 율법에서 강조하는 음식에 대한 규정이 “네가 남한테 당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마라”로 대체되어 있다고 한다.(보커) 이것은 세계 모든 곳에 공통적으로 있는 가장 보편적인 도덕률이라고 한다. 윌리엄 랭어 엮음, S. G. F. 브랜든 외 지음, 박상익 옮김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2001/2007 8쇄 푸른역사) | 알라딘 17,850원 존 보커 지음, 이종인 옮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성서>>(2003/2007 2쇄 시공사) | 알라딘 27,000원 2008년은 촛불소녀! 2009년, 지금은 소녀시대! "힘내!"서 진지를 구축하자!
2008년에 촛불시위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고 구호를 외쳤다. "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이었다. 그러나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는 대통령의 뇌용량만 확인하고 사그라들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현대국가에서는 "혁명적인 이벤트"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국가는 단지 외곽에 둘러처진 외호에 불과하며 그 뒤에 요새와 보루의 강력한 체제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시발점이 되었던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던 여중생들의 구호를 기억해보자. 투표권도 없는 여중생들이 요구한 것은 국가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변형"이었다. 가정과 학교에서 맞닥뜨리는 일상에서 변화를 요구했다. 2008년은 촛불소녀의 해로 기억해야 했다. 그렇다면 2009년, 지금은 소녀시대! 소녀시대는 연예기획사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서 슈퍼주니어와 함께 연습생 대방출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데뷔한 대규모 아이돌 소녀 그룹이다. 아이돌은 명절에 어른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춤과 노래가 서툴러도 이쁘기 그지없다. 아이돌 뒤에는 기획사의 돈벌이가 있는 것이 다르지만 이런 식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 아이돌의 노래실력은 다른 가수들에 비해 처지지도 않는다. 아이돌은 오랜 연습기간을 버텨낸 엘리트들이다. 소녀들 또한 평균 5년이라는 연습기간을 보냈다고 한다. 소녀시대는 2008년 내내 라이벌 아이돌 소녀 그룹 원더걸스에게 밀리다가 2009년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이라는 삽질을 하고 있는 동안 대한민국을 말그대로 소녀시대로 만들었다. 나는 핑클 데뷔 앨범 이후 11년만에 아이돌 소녀 그룹의 음반을 사게 되었다. 소녀시대의 첫 번째 미니앨범에서 타이틀 곡 "Gee"가 대박이었다. 다섯 곡이 들어 있는데 "Gee" 이외에는 주목받은 곡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을 갖은 곡은 "힘내!"이다. "사람들은 모두 원하지 더 빨리 더 많이 오! 난 평범한 소녀인걸". "세상을 뒤집자"며 소녀들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이 곡을 듣다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의 변형"을 위한 혁명전략, 진지전이 떠올랐다. "더 빨리 더 많이", 한방에 뒤집어버릴 듯이 들불처럼 타오르다가 사그라드는 "혁명적 이벤트"가 아니라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지는 진지전 말이다. 군가풍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니 "힘내!" 불러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행가 가사는 유행가 가사다. 이 곡은 삼성 애니콜 휴대폰 햅틱의 광고음악 "Haptic Motion"을 개사한 곡이니 말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 뒤에 버티고 있는 "요새와 보루의 강력한 체제"이다. 소녀시대는 요즘 수도꼭지다. 틀면 나온다. 소녀시대도 촛불소녀처럼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하고 구호를 외쳐야 할 판이지만, 이름부터 가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에스엠은 "힘내!"라면서 소녀들을 굴린다. 6월 25일에 두 번재 미니앨범이 나온다. 소녀시대 <<Gee>>(2009 SM Entertainment) | 와우뮤직 8,500원 http://www.myspace.com/girlsgeneration 공관복음서에는 율법학자가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예수에게 묻자 예수가 답하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실려있다. (마태 22:34-40, 마가 12:18-36, 누가 10:25-37) 예수의 답은 이러했다. 첫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첫째 계명이 ‘믿어라’가 아니라 ‘사랑하여라’이다. '믿어라' 하면 창조설 따위를 믿어버리면 될 것 같은데, '사랑하여라'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호하다. 십일조를 내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이도 있을 수 있고,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그러는 이도 있을 듯하고, 아니면 사람이 죽던 말던 삽질만 하면서 그러는 쥐도 있는 듯하다. 게다가 가장 으뜸가는 계명을 물었는데, 하나가 아니라 둘을 답으로 내놓았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는 첫째 계명 다음에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하고 덧붙이고 있다. 두 계명은 결국 같은 뜻이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이웃을 사랑하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론이라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실천이다. 만약 예수가 첫째 계명만 말했다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십일조니,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니, 삽질 따위에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실천 방안을 알려주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것도 네 몸같이. 그런데 이를 실천하는 일은 무지하게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한 사람은 예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일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처럼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신의 경지는커녕 말하는 짐승에 머물러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못한다면 소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는 적극적인 명제이다. 나한테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해주라는 말이다. 이를 소극적인 형태로 바꾸면 ‘네가 남한테 당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마라’가 된다. 이는, <강유원의 고전읽기>에서 들었는데,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황금률 중에 황금률이라고 한다. 이 또한 지키기 어렵다.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규범이 되어 인간에게 계속 명령을 내린다. 분명한 것은 예수가 말한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기독교도한테만 해당되는 종교적 규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모두 해당되는 보편적 규범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상식을 지켜라.” <<성경전서 새번역>>(2001/2005 8쇄 대한성서공회) | 알라딘 6,840원 로마는 기원전 510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웠다. 지중해 전역을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했지만 귀족들만 부유해지고 농민들은 오히려 빈곤해졌다. 이때 장군들이 가진 것이 없는 농민들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면서 공화국은 무너졌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동생을 죽이고 로마를 세운 이래 기원전 510년까지 왕정이었는데, 로마인 귀족들이 에투루리아인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다. 공화정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체제였다. 공화정은 왕정(집정관)과 과두정(원로원), 그리고 민주정(민회)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공직을 얻으려면 재산이 많아야 했고, 먼저 로마 시민이 되려면 군대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때에도 최소한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지켜야 할 재산이 있어야 열심히 싸울 테니까. 그래서 로마 군대는 소규모 자영 농민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로마인이 소유한 농토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 농토를 찾아나섰다. 농사철이 곧 전쟁을 할 수 있는 때이지만 농토를 이탈리아 반도에서 찾을 때에는 전쟁이 근거리에서 벌어지고 단기간에 끝났기 때문에 농민-병사들은 금방 농토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농토를 지중해 전역에서 찾게 되자 전쟁이 원거리에서 장기간 벌어졌다. 오래 돌보지 않은 농토는 황폐해졌고 빚에 쪼들리게 된 농민들은 귀족들에게 농토를 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귀족들이 지중해 각지에서 사들인 노예들이 농토에서 일하게 되자 농민들은 일할 기회도 잃었다. 따라서 제국 건설의 이익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민회가 토지개혁을 시도하자 원로원이 저지했다. 농민과 귀족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토지개혁은 좌절되었지만 농민들은 귀족들의 위선에 눈을 뜨게 되었다. 토지개혁이 공화국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면 군대개혁은 결정타를 날렸다. 재산이 있는 농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군대에 병사들을 채워넣기 위해 재산 요건을 없앨 수밖에 없었다. 지켜야 할 재산도 공화국에 대한 의무도 없는, 제국 각지에서 몰려든 병사들로 군대가 채워졌다. 그들은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군봉급과 전리품에 눈이 멀어 있었다. 카이사르는 눈뜬 농민들과 눈먼 병사들의 힘을 이용하여 로마 제국 전체를 자기 손에 넣으려 했다. 원로들이 그를 살해했지만 공화국은 이미 몰락한 뒤였다. 다른 장군들이 로마 제국을 서로 차지하려고 계속 싸웠다. 사이먼 베이커 지음, 김병화 옮김 <<처음 읽는 로마의 역사>>(2008 2쇄 웅진 지식하우스) | 알라딘 13,500원
This work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5 License. |
태그
복음서
박상익
역사
기독교
랭어
알라딘
푸른역사
촛불
소녀시대
오세훈
웅진지식하우스
성서
로마
사이먼베이커
바울
와우뮤직
공화정
성경
녹색
이종인
예수
보커
진지전
상식
대한성서공회
시공사
김병화
그람시
브랜든
SM
최근 등록된 덧글
맨 뒤쪽에서 봤습니다. 공연이 ..
by parxisan at 06/18 공연장 어느쪽에서 들으셨나요? 저.. by corejae at 06/18 지구온난화도 그렇고, 환경문제.. by parxisan at 06/15 보고싶어지다가 갑자기 나레이션.. by 박지홍 at 06/15 밥맛 떨어져서 반밖에 못 먹었답.. by parxisan at 06/11 최근 등록된 트랙백
parxisan의 생각
by parxisan's me2DAY parxisan의 생각 by parxisan's me2DAY parxisan의 생각 by parxisan's me2DAY parxisan의 느낌 by parxisan's me2DAY parxisan의 생각 by parxisan's me2DAY 이전 블로그
2009년 07월
2009년 06월 2009년 05월 2009년 04월 2009년 03월 2009년 02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6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2006년 01월 2005년 12월 2005년 11월 2005년 10월 2005년 09월 2005년 08월 2005년 07월 2005년 06월 2005년 05월 2005년 04월 2005년 03월 2005년 02월 2005년 01월 2004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