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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았던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경제가 비틀거리는 동안, 파시즘과 그것의 위성격인 권위주의적 운동들 및 체제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노골적인 침략과 정복의 체제인 파시즘에 맞서게 되자 서로의 체제에 반대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기묘한 동맹"을 맺고서 파시즘을 물리쳤다.
제1차 세계대전은 무제한적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정치체인 제국들---"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삼국동맹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른바 ‘중구열강(Central Powers)'"---사이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그것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불합리하고 자멸적인 목표였으며, 패자를 혁명으로, 승자를 파산과 체력의 고갈로 몰고 갔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를 혼란시키기는커녕," "세계 최대의 공업생산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전시와 전후의 혼란을 극복한 것으로 보였던 1920년대 중반의 몇 년이 지난 뒤에, 산업혁명 이래 가장 크고 가장 극적인 위기로 곤두박질했다." "자신만만했던 미국 자체"가 대공황의 진원지였다. "1929년 10월 29일에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가폭락으로 시작"되어 실업률을 빼고 모든 경제적 지표들을 하락시켰다. 대공황의 원인은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팽창에 대해 충분한 수요를 낳지 못"한 데 있었다. "임금이 정체된 상태에서 이윤이 지나치게 상승함으로써 부자들이 국민소득의 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수요가 헨리 포드 전성기의 공업체제의 급증하는 생산성을 따라잡지 못함에 따라 빚어진 결과는 과잉생산과 투기였고, 그러한 결과는 다시 폭락을 촉발시켰다." "기존의 자유주의 경제라는 틀 속"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자본주의 정부들은 "자신의 국가정책에서 경제적 고려보다 사회적 고려를 우선시"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우파의 급진화와 좌파의 급진화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대공황은 "점진적으로 협상을 통해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대결---필요하다면 군사적인---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현상을 타파하는 데에 전념하는 군국주의 정치세력과 극우파를 집권시켰다." "일본에서는 1930/31년에 온건한 자유주의체제가 민족주의-군국주의체제에 자리를 내주었"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구체제의 묵인이나 사실상 (이탈리아에서처럼) 구체제의 주도로, 다시 말해서 '합헌적인' 방식으로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일단 집권한 뒤에는 기존의 정치 게임 방식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가능한 경우에는 완전히 권력을 인수했다". 대중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던 독일판 파시즘, 즉 "나치즘은 확실히 대중을 위한 사회적 계획을 가졌고, 그러한 계획을 부분적으로 성취했다." "나치즘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다른 어떤 정부보다도 효과적으로 대공황을 이겨낸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치의 반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자유시장에 대한 선험적인 믿음에 내맡기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면을 가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즘 체제는 기본적으로 새롭고 다른 체제라기보다는 개조되고 활력을 되찾은 구체제였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혁명적 체제였다고 주장하지 않을) 1930년대의 제국적, 군국주의적 일본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게 역동적인 산업체제를 이룩한 비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였다." 그 "정책의 목표는 비합리적이고 무제한적이었으므로 히틀러 독일과의 타협과 협상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팽창과 침략은 국가사회주의체제 자체의 속성"이었다. "오직 이러한 도전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일시적이고 기묘한 동맹만이 민주주의를 구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물이었다. 인류의 3분의 1이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유래한 체제 아래에서 살게 되었으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틀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서로를 배제하는 양자택일물로서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대립물---후자는 소련을 모델로 조직된 경제와 동일시되고, 전자는 나머지 모든 경제와 동일시된다---의 견지에서 현대 산업경제를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은 중단되었고, 이 두 진영의 대결뿐만 아니라 각국의 국내외적인 모든 갈등은 히틀러 독일의 부상으로 단일한 대결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단기 20세기[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 소련의 붕괴까지의 시기]의 역사는 러시아 혁명과 그것의 직접적, 간접적 결과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특히 러시아 혁명이, 서방으로 하여금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 독일을 이길 수 있게 해준 동시에, 자본주의로 하여금 스스로를 개혁하도록 고무하고---역설적이게도---대공황에 대한 소련의 명백한 면역을 통하여 자유시장이라는 정통교리에 대한 믿음을 버리도록 고무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구세주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소련의 성과는 그 "경제의 두드러진 원시성과 비효율성이라든가 스탈린의 집단화와 대대적인 억압이 보여준 무자비함과 야만성보다 더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단결해 맞설 대상으로서의 파시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다시 한번 서로 불구대천의 적으로 대치할 준비를 했다." 세계는 냉전에 들어갔지만 "자본주의 정부들은 경제에 대한 개입만이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경제적 파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인민들이 이전에 히틀러를 택했듯이 공산주의를 택할 정도로 급진화될 정치적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제2세계는 "중앙계획"만을 믿었고, 제3세계는 "후진성과 종속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보다 "정부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도 그러했다.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극단의 시대:20세기의 역사 - 상>>(1997 까치) | 영풍문고 강남점 12,000원 1848년 혁명의 실패로 자유주의 정치는 위기를 맞았고, 결국 정치영역에서 밀려나게 되었으며, 그것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무기력은 개인의 본성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과학 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직업적 좌절감과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스트리아 자유주의는 "다른 모든 유럽 국가들의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1848년의 충격적인 패배로 종말을 맞았다. 그 뒤에는 순화된 자유주의자들이 권력을 쥐었고, 1860년대에는 다른 세력들이 거의 기권하다시피한 와중에 입헌 체제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귀족 정치 및 제국의 관료제와 나눠 가져야 했다." "그들의 사회적 기반은 취약했"기 때문에 "제한적 참정권이라는 비민주적 수단을 통해 의회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농민, 도시 기술자와 노동자, 슬라브족 등이 새로운 사회 그룹이 참정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에 이런 그룹은 대중 정당을 결성하여 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도전했"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1895년에는 자유주의의 보루인 비엔나 자체가 기독교 사회당의 파도에 침몰했다......국가 차원에서도 자유주의자는 1900년 무렵 의회 권력을 상실했고 그 뒤 다시는 되찾지 못한다. 그들은 기독교도, 반유대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등 현대의 대중 운동에 의해 분쇄된 것이다." "이 패배에는 깊은 심리적 반항이 따랐다." "전통적 자유주의 문화의 중심에는 합리적 인간이 있"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배와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통제를 통해 훌륭한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합리적 인간은 "비엔나 자유주의 문화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그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지녔지만 더 위험하고 변덕스러운 존재인 심리적 인간에게 밀려났다." "비엔나의 최고 작가뿐만 아니라 화가와 심리학자, 심지어는 예술사가도 해체되어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본성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1870년대 정치학에서 고전적 오스트리아 자유주의에 반대하던 젊은 반항가 그룹", '청년파(Die Jungen)'가 등장했는데, 곧 문학, 회화, 건축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이 "젊은이들의 반항 대상에는 자기들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들이 물려받은 가부장적 문화의 권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폭 넓은 전선을 형성하여 공격한 대상은 자신들을 길러낸 고전적 주류 자유주의 체제의 가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일종의 집단적 오이디푸스적 반항이라는 용어로 규정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것을 과학으로 만들었다. "1895년의 선거에서 비엔나가 칼 뤼거의 반유대주의에 함락된 것은 유대인이든 이교도이든 자유주의 문화의 신봉자들에게는 지독한 타격이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새로운 세력에 가장 크게 위협받는 그룹인 비엔나 유대인 사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교수로 임용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꿈의 해석>>으로 프로이트는 교수가 될 수 있었으며 "학계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꿈의 해석>>은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를 감내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무역사적 이론"이었다.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꾼 꿈을 재료로 분석을 진행했다. 그는 "혁명적 꿈"이라는 자신의 꿈에서 "모든 정치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일차적 갈등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오이디푸스 신화와 결부시킴으로써 "인류 전체의 유년시절"로 보편화하고 결국 과학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그 자신의 정치적 과거와 현재를 아버지와 아들 간의 원초적 갈등에 비하면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정치에서 과학으로 도피한 것이다. 20세기의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은 "정치적 기대의 붕괴"에 직면하자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수정했다". 특히 "마르크스에서 프로이트로의 전환만큼 큰 충격을 준 것은 없었다. 이 전환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괴롭히는 죄악에 대한 탐구와 이해의 범위가 공적이고 사회학적인 영역에서 사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세기말 비엔나>>(2006 생각의 나무) |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 30,000원 헤비 메탈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 둠 메탈이다. 자이언트 스퀴드는 2002년에 결성된 미국의 둠 메탈 밴드이다. 2006년 엔드 레코드에서 <<Matridium Field>>를 발표했다.
둠 메탈이 여러가지 헤비 메탈 음악 중 가장 오래된 형식인데, 그 기원이 최초의 헤비 메탈 밴드들 중 하나인 블랙 사바쓰Black Sabbath의 초기 음악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느린 템포와 낮게 튜닝된 기타 리프, 묵직한 사운드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 하위 장르로는 전통 둠부터 에픽 둠, 데쓰 둠, 블랙 둠, 슬럿지 둠, 퓨너럴 둠, 스토너 둠, 드론 둠 등 오래된 장르인 만큼 여러가지가 있다. 자이언트 스퀴드는 하나 만들어서 갔다붙이자면 프로그레시브 둠 정도 되겠다. 자이언트 스퀴드는 2002년에 미국 세크라멘토에서 결성된 밴드이다. 요즘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한다고 한다. 이들은 2004년에 <<Matridium Field>>로 데뷔했고 2005년에는 <<Monster in the Greek EP>>를 발표했다. <<Matridium Field>>로 2005년에 익스페리멘털 뮤직 레이블인 엔드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Matridium Field>>를 재녹음하여 발표했다. 2007년에는, 여성 보컬과 첼리스트를 멤버로 두고 있는 등 비슷한 점이 많은 밴드 그레이시언Greyceon과 스플릿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을 처음 본 것은 일본 하드코어 메일오더 사이트인 에스티엠 온라인에서였다. 그래서 포스트하드코어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포스트-어쩌고 하는 밴드들 사이에 끼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젠 보편화되어 버린 듯한 '포스트'한 특징보다는, 귀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보컬리스트 아론 그레고리Aaron Gregory의 목소리가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세르이 탄키안Serj Tankian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Neonate>에서 아랍 풍의 멜로디까지 나온다. 헤비 메탈을 듣고자 하는데, 일단 둠 메탈부터 들어봐야겠다. 그런데 요즘에는 메탈의 혼종들이 너무 많아 구별해 듣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리스트를 참조하자. Giant Squid <<Metridium Field>>(2006 The End) | SecondSpin 6.99달러(중고) http://www.myspace.com/giantsquid 인상파는 19세기 후반(1867년에서 1886년 사이)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전통 회화의 방식에 따르지 않고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기법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1874년 일군의 화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던 프랑스 아카데미의 공식 <살롱>전과 별개로 독립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야말로 인상주의라는 말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문필가였던 루이 르루아는 같은 해 풍자잡지인 <르 샤리바리>에 기고한 글에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의 제목을 따서 야유 섞인 의미로 이들을 "인상파"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자 당사자인 화가들은 그 명칭이 시각의 '인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자신들의 뜻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그 명칭을 받아들였다......1880년대 중엽에 이르러 개개 화가들이 가자 다른 미학의 관심사와 원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인상파는 해체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인상파가 이룩한 가장 큰 일은 서양미술 전체를 전통이라는 족쇄에서 해방시켰다는 사실이다." "인상파는 역사와 신화에 관련한 주제를 그려서 문학성과 서사성을 표현할 것을 강조하는 전통 아카데미 회화의 원칙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이들은 "관념이나 사상에 따라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객관의 대상을 자신의 체감으로 번역해내는 것"이라고 했던 쿠르베처럼 "망막에 기록되는 시각의 인상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또한 "형상 위주의 화법을 거부하고," "색채의 조화와 대비를 적절하게 이용"한 "점묘법과 가벼운 붓칠을 통해" "명멸하는 자연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색채와 선의 율동을 그대로 화폭에 다아내"려고 했다. 그래서 "야외에서 스케치한 것을 작업실로 가져와 유화로 완성하는 전통을 버리고 부댕이 그랬던 것처럼 애초에 야외로 나가 실제의 사물을 보면서 그리는 방법을 채택했다. 인상파의 눈에 띤 것은 "근대 도시 생활의 광경"이었다. 인상파가 활동하던 곳은 오스망에 의한 "프랑스판 새마을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파리이다. "마네의 그림은 오스망의 근대화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인상파가 활동하던 시기는 오스망화에 의해 폭발한 파리코뮌 전후의 시기이다. "파리 코뮌 이후 파리지앵의 정서는 한마디로 끔찍한 과거를 빨리 잊고, 예전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카유보트는 "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들,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탐닉하는 소비자들"의 시선으로 본 파리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반면 모네와 피사로는 "산업화에 밀려 쇠락해가는 시골 풍경이나 자연의 경치를 그렸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이들의 감수성은 도회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별 화가들을 하나의 유파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근대성'이라는 범주다." 근대미학은 인상주의로 시작된다.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이 미학은 인상주의부터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큐비즘 등 각기 모양새를 달리하는 수많은 잡동사니가 더미를 이루는, 거대한 고물상 같은 것이다." 인상주의는 모더니즘을 거쳐 아방가르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택광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2007 아트북스) | 곽봉근 0원 둠라이더스는 2004년 미국 보스턴 하드코어 씬으로부터 등장한 밴드이다. 2005년 고전적인 록/메탈을 잡음으로 버무린 하드코어 음악을 담은 앨범 <<Black Thunder>>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둠라이더스는 노이즈/스토너/둠 뿐만 아니라 고딕적인 어두운 분위기까지 겻들인 하드코어 밴드라 할 수 있다.
둠라이더스는 미국 보스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하드코어 밴드들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메탈코어 밴드 제쥬트Jesuit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았었고 현재 매쓰코어 밴드 컨버지Converge의 베이시스트인 네이트 뉴튼Nate Newton과 포스트하드코어 밴드 캐스트 아이언 하이크Cast Iron Hike의 기타리스트였던 크리스 퍼페키Chris Pupekki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밴드이다. 이들은 또한 각자 둠라이더스와 비슷한 성향의 밴드들인 올드 맨 글룸Old Man Gloom과 블랙테일Blacktail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네이트 뉴튼와 크리스 퍼페키는 각각 제쥬트와 캐스트 아이언 하이크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서로의 밴드의 대단한 팬이었다"고 한다. 이 둘은 취향이 비슷해서 언젠가 밴드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그게 실현된 것이 바로 둠라이더스다. 둠라이더스는 2004년에 결성되어 2005년에 정규 앨범 <<Black Thunder>>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첫 곡 <Black Thunder>를 듣자마자 스토너 록이 생각난다. 둠라이더스의 음악도 고전적인 록/메탈의 영향을 받았고 잡음을 섞어 현대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스토너 록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면 보스턴 하드코어 씬에서 둠라이더스보다는 1990년대에 활동했던 밀리그램Milligram 같은 밴드가 더 적당한 예가 될 것이다. 둠라이더스는 더 쎄다. 둠라이더스의 마이스페이스에 가서 보면 'death and roll'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데쓴롤Death N' Roll은 펑크, 하드 록, 엔더블유오비에이치엠NWOBHM 스타일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데쓰 메탈 밴드들의 음악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용어"라고 한다. 데쓴롤의 대표적인 밴드로는 스웨덴의 인툼드Entombed가 있는데, 둠라이더스는 인툼드의 스타일에 데쓰 메탈 대신 하드코어를 대입해 풀어낸 밴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둠라이더스는 무섭다. <<Black Thunder>>는 앨범 커버에서부터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말(馬) 대신 고스트 라이더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으면 더 멋졌을 거 같은데 아쉽다. 아무튼 둠라이더스는 씬 리지Thin Lizzy나 모터헤드Motorhead 같은 옛날 록/메탈 뿐만 아니라 고딕 풍의 메탈코어 밴드 인테그러티Integrity와 댄직Danzig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Midnight Eye>는 다소 뜬금없이 클린 보컬로 부르는 곡인데, 마치 댄직이 부르는 노래 같다. 댄직과 함께 투어를 하기도 했고 비슷한 성향의 밴드인 콜리세움Coliseum과 함께 2005년에 발표한 스플릿 앨범 <<Not of This World>>에서는 댄직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일본의 스토너/둠/드론 밴드인 보리스Boris와 함께 라이브 앨범 <<Long Hair and Tights>>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다음 앨범을 위해 곡을 쓸 계획"이었다고 하니 곧 앨범이 나올 듯하다. 새천년 들어 하드코어는 아이돌스런 가락을 겻들여 대중화되고 있는데, 둠라이더스나 앤젤빌Angelville 등 태생적으로 록/메탈스런 가락으로 승부하는 밴드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반응이 아닌가 한다. 특히 메일린 앤 더 선스 오브 디재스터Maylene and the Sons of Disaster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Doomriders <<Black Thunder>>(2005 Deathwish) | CD universe 11.29달러 http://www.myspace.com/doomri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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