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
인상파는 19세기 후반(1867년에서 1886년 사이)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전통 회화의 방식에 따르지 않고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기법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1874년 일군의 화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던 프랑스 아카데미의 공식 <살롱>전과 별개로 독립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야말로 인상주의라는 말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문필가였던 루이 르루아는 같은 해 풍자잡지인 <르 샤리바리>에 기고한 글에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의 제목을 따서 야유 섞인 의미로 이들을 "인상파"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자 당사자인 화가들은 그 명칭이 시각의 '인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자신들의 뜻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그 명칭을 받아들였다......1880년대 중엽에 이르러 개개 화가들이 가자 다른 미학의 관심사와 원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인상파는 해체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인상파가 이룩한 가장 큰 일은 서양미술 전체를 전통이라는 족쇄에서 해방시켰다는 사실이다."

"인상파는 역사와 신화에 관련한 주제를 그려서 문학성과 서사성을 표현할 것을 강조하는 전통 아카데미 회화의 원칙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이들은 "관념이나 사상에 따라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객관의 대상을 자신의 체감으로 번역해내는 것"이라고 했던 쿠르베처럼 "망막에 기록되는 시각의 인상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또한 "형상 위주의 화법을 거부하고," "색채의 조화와 대비를 적절하게 이용"한 "점묘법과 가벼운 붓칠을 통해" "명멸하는 자연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색채와 선의 율동을 그대로 화폭에 다아내"려고 했다. 그래서 "야외에서 스케치한 것을 작업실로 가져와 유화로 완성하는 전통을 버리고 부댕이 그랬던 것처럼 애초에 야외로 나가 실제의 사물을 보면서 그리는 방법을 채택했다. 인상파의 눈에 띤 것은 "근대 도시 생활의 광경"이었다.

인상파가 활동하던 곳은 오스망에 의한 "프랑스판 새마을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파리이다. "마네의 그림은 오스망의 근대화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인상파가 활동하던 시기는 오스망화에 의해 폭발한 파리코뮌 전후의 시기이다. "파리 코뮌 이후 파리지앵의 정서는 한마디로 끔찍한 과거를 빨리 잊고, 예전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카유보트는 "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들,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탐닉하는 소비자들"의 시선으로 본 파리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반면 모네와 피사로는 "산업화에 밀려 쇠락해가는 시골 풍경이나 자연의 경치를 그렸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이들의 감수성은 도회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별 화가들을 하나의 유파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근대성'이라는 범주다."

근대미학은 인상주의로 시작된다.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이 미학은 인상주의부터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큐비즘 등 각기 모양새를 달리하는 수많은 잡동사니가 더미를 이루는, 거대한 고물상 같은 것이다." 인상주의는 모더니즘을 거쳐 아방가르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택광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2007 아트북스) | 곽봉근 0원
by parxisan | 2008/05/24 17:46 | 비정규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parxisan.egloos.com/tb/375598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무료영어 at 2008/06/30 22:33
200문장 영어회화 씨디를 신청하시는 모든분께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비용전혀없습니다!
아래주소를 클릭해서 무료신청하세요
http://english.redirectme.net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

텍스트 지향

Creative Commons License
This work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5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