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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과학생들이 문과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문과학생들이 문과를 선택하는 이유는 문과 교과목을 더 잘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부분 수학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덧셈을 모르면 뺄셈을 못하고 미분을 모르면 적분을 못하는 식이기 때문에 왕년에 조금이라도 놀았던 학생이라면 다른 과목은 벼락치기로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수학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문과로 갔다. 이과에 있다가 3학년이 되면서 문과로 간 내 단짝 친구도 이과 있을 때는 물어보기만 했는데, 문과 가니까 가르쳐 줄 때도 있다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과대학에 진학해보니 사람들은 공과대학생들을 단무지라고 불렀다. 단순무식하다고.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유식과 무식을 가르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제어공학 교수가 특히 우리들을 단무지라고 불렀다. 나는 그게 못마땅했다. 공과대학 교수 주제가 자기 제자들을 단무지라고 부르다니. 게다가 문과대학생들보다 성적도 더 좋은 학생들에게 말이다. 얼마전에 그 교수가 쓴 <<전기회로와 신호>>를 들춰보다가 "서론"이 "태초에 전자가 있었으니..." 하면서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고 한참 웃었다. 웃다가 문득 떠오른 것은 그 교수가 항상 역사를 강조하곤 했다는 것이다. 공과대학생에게 "명석판명"한 공식만 가르치면 될 것을 거창하게 "태초에..."까지 써가면서 지금 과학자들이 보면 헛웃음 나오는 좌충우돌 실험들을 왜 가르쳤을까? 왜 그 교수는 공과대학생들을 단무지라 부르며 역사를 강조했을까? 아마도 유식과 무식을 가르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역사의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소년이여, 야망을 버리고 역사책을 읽어라. 강유원 선생님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추천해주셨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잊지못할 추억이 있다. 평소에 헛소리가 많은 나한테 직장동료가 그런 헛소리는 어디서 봤냐고 물어서 이 책을 빌려주었다. 직장동료는 책을 읽고 나서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고 했다. 이 책에 따르면 자기는 좌파라며 불안해했다. 자기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이 한국역사에서는 좌빨로 몰렸다면서. 그러더니 반대편 관점에서 쓴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학교교육과 항상 보고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반대편 관점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굳이 그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이 책은 '좌빨 출판사' 따위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나온 균형잡힌 책이다. 오히려 더 급진적인 책을 읽어서 균형을 잡아야 할 판이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49597 http://allestelle.net/resources/2009/06/06/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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